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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위류 노트

농부의 노트 · 키위류

감귤과 키위 사이에서, 손이 바쁜 이유

감귤나무만 돌보던 밭에 키위나무를 더하고 나서, 한 해가 흘러가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두 작물이 손을 필요로 하는 때가 겹치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합니다.

키위밭 풍경

가을, 두 나무가 동시에 바빠지는 때

가을이 되면 저희 밭은 한 번에 두 가지 일이 겹칩니다. 노지에서 키우는 감귤, 그러니까 흔히 온주밀감이라 부르는 감귤은 11월에서 12월 사이에 따야 합니다. 그런데 키위도 마침 같은 계절인 가을에 수확기를 맞습니다. 아버지가 감귤나무만 심으셨던 시절에는 이 계절에 감귤에만 매달리면 됐을 텐데, 지금은 두 나무를 하루씩 번갈아 오가야 합니다. 감귤밭에 있다가 다음 날은 키위밭으로 옮겨 가는 식으로, 가을이 그렇게 지나갑니다.

그래서 가을 초입이 되면 저도 모르게 두 밭의 날씨부터 번갈아 살피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몸이 하나뿐이니, 그날그날 더 급한 밭부터 먼저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감귤을 딴 뒤, 키위는 그때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감귤은 나무에서 딴 순간 제 손을 거의 떠나는 열매입니다. 상자에 담아 보내고 나면 그걸로 그 열매에 대한 일은 대체로 끝이 나지만, 키위는 다릅니다. 딱딱한 채로 따서 창고에 들이고 나면, 오히려 그때부터 다른 일이 시작됩니다. 얼마나 후숙시켜서 내보낼지를 매번 가늠해야 하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노트에 적어 두었으니 여기서는 요지만 말씀드리면, 감귤과 달리 키위는 밭에서의 일이 끝나도 손에서는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동안에는 감귤밭보다 키위 창고에 머무는 시간이 오히려 더 긴 날도 있습니다. 감귤 상자를 보내고 나면 손이 가벼워지는데, 키위 상자를 들일 때는 오히려 다시 무거워지는 기분입니다.

덩굴로 뻗는 나무, 손 가는 결이 다릅니다

키위나무는 감귤나무와 자라는 모양부터 다릅니다. 감귤나무는 스스로 둥그런 수형을 잡아가며 자라는 편이지만, 키위는 덩굴로 뻗어나가는 성질이 있어서 다루는 결이 감귤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이 차이를 하나하나 풀어놓으면 글이 한참 길어질 테니, 여기서는 두 나무가 자라는 모양 자체가 다르다는 정도만 적어 두겠습니다. 그래서 감귤밭에서 하던 손놀림을 그대로 키위밭에 가져가면, 안 맞는 부분이 꽤 있습니다. 다만 두 나무 다 제 손으로 키운다는 사실은 똑같습니다.

겨울 내내, 감귤과 키위를 같이 돌봅니다

온주밀감을 다 따고 나면 감귤 일이 끝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라봉이나 천혜향 같은 만감류는 1월에서 3월 사이에 또 한 번 수확철을 맞습니다. 온주밀감은 노지에서 그대로 키우지만, 만감류는 겨울을 넘겨야 해서 하우스 안에서 자랍니다. 이 시기는 키위가 후숙을 마치고 한창 상자에 담겨 나가는 때와 거의 겹칩니다. 키위는 가을에 딴 걸 12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나눠서 내보내는 구조라, 겨울 내내 창고 문을 여닫는 일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감귤 안에서도 노지와 하우스를 오가는 일이 겹치고, 거기에 키위 창고까지 더해지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한테 겨울은 감귤밭과 키위 창고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계절입니다. 어느 한쪽이 한가해지는 때가 딱히 없다 보니, 겨울이 오히려 한 해 중 가장 정신없이 지나갑니다.

겨울 기온은 감귤부터 흔들어 놓습니다

감귤은 기온에 유난히 민감한 나무입니다. 겨울철 기온이 조금만 적당하지 않아도 다른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나무가 힘들어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겨울이면 저는 우선 감귤나무의 기온부터 신경 쓰게 됩니다. 키위 창고 쪽은 그 사이사이에 짬을 내어 들여다보는 식으로, 순서가 자연스럽게 감귤 쪽으로 먼저 기울곤 합니다.

두 작물을 같이 돌보며 배운 것

감귤만 볼 때는 몰랐던 것들을, 키위를 같이 키우면서 알게 됐습니다. 한쪽 작물이 아쉬운 해에도 다른 쪽에서 어느 정도는 버텨준다는 걸, 몇 해를 겪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감귤 농사만 짓던 시절에는 그해 감귤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감귤이 아쉬운 해에도 키위 쪽에서 마음을 다잡을 여지가 생겼습니다. 손 가는 시기가 서로 다르다 보니, 한 해 내내 한 가지 일에만 매여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이제는 압니다. 밭이 둘로 나뉘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한 해가 조금 더 촘촘하게 채워졌다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감귤 한 가지만 하던 시절에는 몰랐던 감각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두 나무를 함께 키우는 값어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대만큼 안 됐던 해도 있었습니다

매년 같은 만큼 거두는 건 아닙니다. 어떤 해는 감귤도 키위도 기대한 만큼 나와주지 않아서, 한 해를 넘기며 마음이 무거웠던 적도 있습니다. 정확히 무엇 때문이었다고 하나로 짚어 말하기는 저도 어렵습니다. 날씨 탓도 있었을 거고, 제 판단이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 해를 몇 번 지나고 나니, 한 해의 결과만으로 다음 해를 미리 점치지 않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도 다음 해에는 또 조금 나아지겠거니 하고 넘기는 편입니다.

화학과에 다닐 때는 변수를 하나씩 통제하면서 실험을 했습니다. 밭에 나와 보니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그런 해를 몇 번 겪고서야 실감했습니다.

그래도 두 나무를 함께 키우는 이유

그럼에도 감귤 옆에 키위나무를 계속 두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감귤이 쉬어가는 계절에 밭이 통째로 비어 있는 게, 저한테는 오히려 더 불편했습니다. 손이 두 배로 가더라도 사계절 내내 뭔가는 자라고 있는 밭이 저는 더 마음에 듭니다. 아버지가 감귤나무를 심으셨던 마음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려받은 밭에 제가 나무 한 종류를 더 심은 것도, 결국은 같은 마음의 연장이었던 셈입니다. 손님들도 감귤만 있을 때보다 키위까지 있을 때 저희 밭을 더 오래 기억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계절을 나눠 쓰는 밭

감귤과 키위, 두 나무 사이에서 한 해를 보내다 보면 손 놀 날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나눠 쓰는 계절이, 지금 저희 밭이 돌아가는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