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노트 · 키위류
키위 한 알에도, 저마다 다른 손이 갑니다
직판장에서 키위를 건네드리면 다들 잠깐 멈칫하십니다. 감귤과 달리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낯설어하시는 겁니다. 제가 보고 겪은 손질법들을 정리해봤습니다. 정답은 없지만, 하나쯤은 손에 맞으실 겁니다.

손질법부터 여쭤보시는 분들
농원 판매대에 서 있다 보면 키위를 손에 들고 잠시 멈칫하시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감귤은 다들 익숙하게 손으로 까시는데, 키위 앞에서는 다릅니다. 겉껍질에 잔털이 보송보송하게 나 있으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낯설어하시는 겁니다. 겨울부터 봄 사이, 저희 밭 키위가 한창 나올 때 특히 이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특히 처음 키위를 사 가시는 분들은 계산을 마치고도 자리를 뜨지 않고 저에게 한 번씩 여쭤보십니다. 이거 어떻게 드시는 거냐고요.
그런 질문을 몇 번 받다 보니, 제가 직접 먹어보고 손님들 드시는 모습을 지켜보며 알게 된 방법들을 한번 정리해두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어느 하나가 정답은 아니고, 그날 상황과 손에 익은 정도에 따라 골라 쓰시면 됩니다.
씻을 때 잔털부터 정리합니다
어떤 방법을 쓰시든, 손질하기 전에 먼저 흐르는 물에 씻으면서 겉면의 잔털을 정리해주시는 게 좋습니다. 손바닥이나 부드러운 채소 솔로 표면을 살살 문질러주면 잔털과 흙기가 함께 씻겨 내려갑니다. 억지로 박박 문지르실 필요는 없고, 물살에 헹구듯 가볍게 문질러주시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껍질을 어차피 벗기실 거라면 대충 헹구기만 해도 되지만, 뒤에 말씀드릴 것처럼 껍질째 드시거나 아이 손에 통째로 쥐어주실 거라면 이 과정을 한 번 더 신경 써주시는 게 좋습니다.
반으로 갈라 숟가락으로
가장 흔하게들 하시는 방법은 가로로 반을 가른 뒤 숟가락으로 파먹는 겁니다. 껍질을 따로 벗길 필요가 없어서 손이 가장 덜 가고, 씨가 몰려 있는 가운데까지 숟가락 하나로 깔끔하게 훑어낼 수 있습니다. 설거지거리도 껍질 반쪽 두 장뿐이라 뒤처리가 간단한 것도 장점입니다.
저도 밭일하다 짬이 나면 이 방법으로 가장 많이 먹습니다. 칼도 도마도 꺼낼 필요 없이 손에 쥔 채로 바로 먹을 수 있어서, 일하는 틈틈이 요기하기엔 이만한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숟가락 자국이 울퉁불퉁하게 남는 편이라, 손님상에 보기 좋게 낼 때는 잘 쓰지 않습니다. 그래도 맛을 보기엔 이 방법만 한 게 없어서, 새로 들어온 품종을 맛볼 때도 저는 일단 반을 갈라 숟가락부터 듭니다.
필러로 벗겨 써는 방법
집에 손님을 모시거나 선물로 담아낼 때는 필러로 껍질을 벗기는 쪽을 씁니다. 감자 껍질 벗기듯 필러를 위아래로 밀어내리면 껍질이 얇게 벗겨지는데, 칼로 벗길 때보다 과육 손실이 적어서 알뜰하기도 합니다. 껍질을 다 벗긴 다음엔 동그랗게 썰어도 되고, 세로로 갈라 부채꼴로 썰어도 됩니다.
자른 단면이 그대로 드러나다 보니 접시에 담았을 때 훨씬 그럴싸해 보입니다. 다른 과일과 섞어 화채나 과일 접시를 낼 때도 이 방법을 씁니다. 필러가 마땅찮으면 과도로 위아래를 살짝 잘라내고 세로로 얇게 벗겨내도 비슷하게 정리됩니다. 손이 한 번 더 가는 게 흠이지만, 보여드려야 할 자리에는 이만한 손질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양쪽 끝만 잘라 쭉 짜먹는 방법
정말 바쁠 때는 양쪽 꼭지 부분만 살짝 도려내고, 껍질 안쪽 둘레를 숟가락으로 한 바퀴 돌려 과육을 헐겁게 만든 다음 치약 짜듯 밀어서 먹는 방법도 씁니다. 그릇 하나 없이 서서도 먹을 수 있어서, 밭일하다 당이 떨어질 때 저희끼리 종종 쓰는 방법입니다.
손에 즙이 좀 묻는 게 흠이지만, 씨앗까지 한입에 다 들어오니 오히려 편하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처음 해보시면 힘 조절이 서툴러서 과육이 툭 떨어지기도 하니, 처음 시도하실 땐 그릇을 받쳐놓고 해보시길 권합니다. 익숙해지면 껍질 하나 안 남기고 깔끔하게 다 드실 수 있습니다.
껍질째 드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의외로 키위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드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특히 골드키위나 저희가 키우는 레드키위·루비키위처럼 잔털이 적고 껍질이 부드러운 품종은, 흐르는 물에 씻어 그대로 베어 무는 분들이 꽤 있더군요. 껍질째 드시면 과육만 먹을 때보다 식이섬유를 약 50% 더 챙길 수 있고, 골드키위는 폴레이트나 비타민E 같은 성분도 30% 이상 더 섭취된다는 자료도 있습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런 정보도 있다는 정도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저도 몇 번 씻어서 그대로 먹어본 적이 있는데, 식감은 살짝 낯설어도 못 먹을 정도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껍질 특유의 식감을 낯설어하시는 분도 많고, 잔털이 남아 있으면 입안이 까끌거릴 수 있으니 앞서 말씀드린 대로 문질러 잘 씻는 게 먼저입니다. 신맛이 강한 그린키위는 껍질이 상대적으로 거친 편이라, 껍질째 드시려면 골드나 레드·루비 쪽이 더 편하실 겁니다. 식감이나 위생이 걱정되시면 굳이 무리하실 필요 없이, 앞서 말씀드린 방법들로 편하게 드시면 충분합니다.
그린키위 껍질에는 액티니딘이라는 소화효소가 유독 많다고 하는데, 화학과 시절 배운 이름을 여기서 다시 마주칠 줄은 몰랐습니다. 민감하신 분이라면 이 부분만 참고하시면 됩니다.
아이들 손에 쥐어드릴 때는
아이들과 함께 오신 손님들을 보면 다들 요령이 비슷합니다. 반으로 갈라 작은 숟가락을 쥐어주고 직접 파먹게 두시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도 그 방법을 제일 좋아하더군요. 껍질에 손이 닿을 일이 없고, 흘려도 반쪽 껍질이 그릇 역할을 해주니 어른들 입장에서도 뒤처리가 수월한가 봅니다.
아직 손이 야무지지 않은 아이라면 과육만 미리 잘게 썰어서 작은 그릇에 담아주시는 게 무난합니다. 씨가 오도독 씹히는 식감을 낯설어하는 아이도 있으니, 처음 드릴 땐 소량만 먼저 맛보게 하시고 반응을 살펴보시는 걸 권합니다. 작은 숟가락이나 포크를 쥐어드리고 옆에서 잠깐만 지켜봐 주시면 대부분 금방 요령을 터득합니다.
결국은 손에 익은 대로
방법이야 여러 가지지만, 결국은 그날그날 손에 잡히는 대로 드시면 됩니다. 저도 그날 기분과 자리에 따라 방법을 바꿔가며 먹습니다. 정답을 찾기보다 편한 손을 찾으시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