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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위류 노트

농부의 노트 · 키위류

밭을 놀리지 않으려고, 키위나무를 더했습니다

감귤나무만으로 시작한 밭에, 언젠가부터 키위나무가 함께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제주의 여러 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계절, 그 밭,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적어봅니다.

감귤 다음 계절의 키위

밭이 조용해지던 계절

감귤을 다 따고 나면, 밭은 한동안 할 일이 줄어듭니다. 나무마다 열매를 비우고 나면 가지치기와 거름 주기 말고는 손이 덜 가는 시기가 옵니다. 그맘때가 되면 저는 종종 밭 끝에 서서, 이 넓은 땅을 감귤 한 가지로만 채우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심은 나무들이 자라는 걸 보면서도, 그 나무들이 쉬는 계절엔 저도 함께 쉬어야 하는 게 어딘가 아쉬웠습니다. 겨울 한 철, 밭이 온통 조용해지는 그 며칠이 저는 유독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 며칠이 지나면 다시 감귤나무를 살피러 나갔지만, 그 잠깐의 정적은 매번 마음에 남았습니다.

감귤 하나로도 충분했던 시절

저희 밭은 원래 감귤 한 가지로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는 제주 감귤이 가장 좋았던 시절이라, 그 무렵 감귤은 제주 농가 소득의 절반을 훌쩍 넘게 채웠다고 합니다. 그런 시절을 지나온 밭이니, 저희도 오랫동안 감귤 한 가지만으로 별 부족함을 못 느꼈습니다.

나무가 자라고 해가 바뀌는 동안, 굳이 다른 걸 더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셈입니다. 사실 제주 농업 전체로 보면 감귤 한 가지에 집중하던 시기를 지나 다른 원예작물로 넓어지는 흐름이 그때도 이미 있었다지만, 저희 밭까지 오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렸습니다. 그러다 밭에 여유가 조금씩 생기면서, 새로운 걸 들일 여지도 함께 생겼습니다.

그 무렵 제주 밭에 일던 바람

키위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 후반에야 첫 묘목이 들어왔고, 1981년에 이르러서야 전국에서 첫 결실을 봤다고 하니, 감귤에 비하면 키위는 한참 늦둥이인 셈입니다. 그런 키위가 감귤 곁을 파고든 게 저희 밭만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주에서는 감귤을 제외한 다른 과수 밭이 2016년 523.1헥타르에서 2024년 930헥타르로, 10년이 채 안 되는 사이 77.8%나 늘었습니다. 키위뿐 아니라 매실, 블루베리, 포도, 무화과 같은 것들이 함께 늘어난 수치이니, 그 흐름 어딘가에 저희 키위나무도 함께 있었던 셈입니다. 저희가 넣은 나무 몇 그루도, 돌아보면 그 흐름 한 자락이었을 겁니다.

감귤과는 다른 손이 가는 나무

막상 키위나무를 들이고 보니, 감귤을 대하던 손과는 다른 손이 필요했습니다. 감귤은 나무에 달린 채로 색이 들고 단맛이 오르지만, 키위는 딴 뒤에도 한참을 더 익어가는 과일이라는 걸 그때 새로 알았습니다. 수확 시기도, 손이 많이 가는 계절도 감귤과는 달라서, 한동안은 두 나무의 달력을 머릿속에서 따로 그려야 했습니다.

오래 감귤만 보고 자란 눈에는, 키위가 매년 새로 배우는 나무였습니다. 지금도 완전히 다 안다고는 말 못 하고, 여전히 한 해 한 해 조금씩 더 배워가는 중입니다.

제주가 마침 맞는 땅이었다는 것

다행이었던 건, 제주 땅 자체가 키위와 잘 맞는 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제주는 기후와 토질이 뉴질랜드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는데, 키위가 원래 그쪽에서 많이 재배되는 과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아주 낯선 조합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2004년 무렵부터는 뉴질랜드 제스프리사의 골드키위 계약재배가 국내에서도 늘면서, 시설을 갖춘 키위 밭이 전국적으로 조금씩 늘어났다고 합니다.

저희가 키위를 심을 무렵에도, 그렇게 자리 잡아가는 흐름이 이미 어느 정도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덕분에 저는 키위나무를 심으면서도, 이 땅이 낯선 걸 억지로 받아주는 느낌은 별로 없었습니다.

계절을 나눠 쓰는 지금의 밭

지금 저희 밭은 감귤 혼자 다 채우던 때와는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늦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는 감귤이 밭을 채우고, 감귤이 자리를 비우는 그 사이 시기는 키위가 채웁니다. 한 계절이 끝나면 다음 계절이 바로 이어받으니, 밭에 정말로 손을 완전히 놓는 달은 거의 없습니다.

아버지가 감귤나무만 보던 밭에, 이제는 두 가지 나무가 번갈아 밭을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감귤 상자를 정리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키위 상자를 꺼내니, 창고 안 풍경도 밭을 따라 함께 바뀝니다. 이제는 그 풍경이 오히려 익숙하고,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묻는 말

감귤철에 오셨던 손님이 다른 계절에 다시 들르시면, 같은 밭이 맞냐고 되물으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계절마다 밭에 나와 있는 나무가 다르니, 처음 보시는 분들은 신기해하십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감귤나무 옆에 키위나무를 더한 이야기를 짧게 들려드리곤 합니다.

밭 하나에 계절이 두 번 있다는 게, 듣는 분들에게는 꽤 재미있는 이야기인 모양입니다.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밭을 넓힌 보람을 새삼 느낍니다. 밭을 둘러보시라고 권해드리면, 대부분 반가워하시며 한 바퀴 도시곤 합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 이유

돌아보면 키위나무를 더한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감귤 한 가지에만 기대던 밭보다, 계절을 나눠 쓰는 밭이 여러모로 마음이 편했습니다. 한 해 벌이를 감귤 한 철에만 걸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그렇고, 밭에 나갈 이유가 사계절 내내 있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한림을 벗어난 적 없는 저한테는, 이 밭이 한 해 내내 조용하지 않다는 사실 자체가 꽤 든든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그때 밭 끝에 서서 하던 고민에 스스로 답을 한 셈이 됐습니다.

감귤 다음 계절도, 이제는 있습니다

감귤 철이 끝나도, 이제 저희 밭은 완전히 조용해지지 않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키위나무를 더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계절도 또, 그다음도 또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