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노트 · 키위류
그린이랑 골드랑 뭐가 다르냐고 물으신다면
직판장에 키위를 색깔별로 늘어놓아도 손님들은 꼭 물어보십니다. 그린이랑 골드는 뭐가 다르냐고, 그리고 저희가 키우는 이 빨간 건 또 뭐냐고요. 그린·골드·루비, 세 가지 키위를 한자리에서 비교해드립니다.

키위는 사실 세 갈래입니다
이 질문을 제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받습니다. 색깔별로 나눠 진열해도 손님들 눈에는 다 그냥 키위로 보이시나 봅니다. 사실 키위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뉩니다. 신맛이 강하고 과육이 초록빛인 그린키위, 당도를 앞세운 노란 과육의 골드키위, 그리고 저희 밭이 주로 키우는 루비·레드 계열처럼 과육 전체가 붉은 것들입니다. 같은 키위라는 이름 아래 이렇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나면, 고르시는 재미가 한결 커집니다.
새콤함의 정석, 그린키위
그린키위는 아마 가장 익숙한 얼굴일 겁니다. 대표 품종은 헤이워드인데, 1928년에 나온 품종이 지금도 전 세계 그린키위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거의 백 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킨 셈입니다. 과육은 진한 초록빛이고, 한 입 베어 물면 신맛이 먼저 혀끝을 톡 쏩니다.
그래서 그린키위는 호불호가 좀 갈립니다. 새콤한 맛 자체를 좋아하시는 분들껜 이만한 게 없다고 말씀드리지만, 신 걸 잘 못 드시는 분들은 한 입 드시고 인상을 찌푸리시기도 합니다. 저희 밭에서 주력으로 키우는 품종은 아니지만, 손님들께 세 가지를 비교해드릴 때면 저는 늘 그린키위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가장 오래됐고, 가장 널리 퍼진 품종이니까요.
달콤함을 앞세운 골드키위
골드키위는 이름 그대로 과육이 샛노랗고, 신맛보다 단맛이 훨씬 진합니다. 1990년대에 나온 골드키위가 먼저 자리를 잡았고, 2010년에는 한층 달고 껍질까지 부드러운 썬골드라는 개선 품종이 나왔습니다. 요즘 마트에서 보시는 골드키위는 이 썬골드 계열인 경우가 많습니다. 비타민C도 넉넉히 들어 있어서, 새콤한 맛은 부담스럽지만 키위는 챙겨 드시고 싶다는 손님들께 자주 권해드립니다.
국내에서도 골드키위를 손 놓고 지켜보지만은 않았습니다. 농촌진흥청이 30여 년 동안 국산 키위 품종을 26개나 육성해왔다고 하는데, 그 중 스위트골드나 감황 같은 품종은 맛도 좋고 수확 시기도 빨라 인기를 얻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직판장에서도 이런 국산 품종을 더 자주 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희가 키우는 루비·레드키위
저희 밭이 주력으로 키우는 건 이 루비·레드 계열입니다. 정식 이름은 루비레드키위인데, 제스프리라는 회사가 20년 넘게 걸려 개발한 품종이라고 합니다. 잘라보면 그린이나 골드와 달리 과육 전체가 빨갛습니다.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를 머금고 있어서인데, 그래서인지 단맛이 진하면서도 신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시중에서는 루비키위, 레드키위 같은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다 같은 품종을 가리킵니다. 유통되는 시기는 3월에서 5월 사이라, 감귤이 자리를 비우는 봄철을 이 나무들이 채워줍니다. 저희 밭에 감귤나무 곁에 키위나무를 더한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계절이 비는 걸 그냥 두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안토시아닌은 산도에 따라 색이 바뀌는 색소라서, 화학 시간엔 배춧물에 식초를 떨어뜨리는 실험으로 배웠습니다. 루비레드키위의 그 붉은빛도 같은 색소 집안입니다.
제주와 키위가 잘 맞는 이유
키위 하면 뉴질랜드를 먼저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제주도 기후와 토질이 뉴질랜드와 꽤 닮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주에서 키운 키위는 가을에 수확해서 12월부터 이듬해 4월 사이에 나오는데, 이게 뉴질랜드산이 없는 시기와 딱 맞물립니다.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 키위와 엇갈려 나오니, 한 해 내내 키위가 끊이지 않고 유통되는 셈입니다.
저희 밭도 마찬가지입니다. 감귤이 자리를 비우는 계절, 그리고 뉴질랜드 키위가 뜸해지는 계절에 딱 맞춰 키위가 여뭅니다. 땅과 계절이 서로 잘 맞아떨어진 덕에, 큰 무리 없이 두 가지 과일을 한 밭에서 함께 키울 수 있었습니다.
껍질째 먹어도 될까요
요즘은 키위를 껍질째 드시는 분들도 종종 계십니다. 자료를 찾아보면 껍질까지 먹었을 때 식이섬유를 과육만 먹을 때보다 50% 가까이 더 챙길 수 있고, 골드키위는 폴레이트와 비타민E도 30% 이상 더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골드키위는 전체 폴리페놀의 30%가량이 껍질에 몰려 있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영양만 보면 껍질을 버리는 게 아까울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그린키위는 껍질에 털이 있어 식감이 거칠고, 소화를 돕는 효소도 더 많이 들어 있다고 해서 예민하신 분들은 입안이 까끌하거나 간지러운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껍질째 드신다면 상대적으로 매끈한 골드키위나 루비키위 쪽이 편하실 겁니다. 처음 시도하신다면 깨끗이 씻어서 조금만 드셔보시고, 불편한 느낌이 들면 바로 멈추시면 됩니다. 물론 껍질을 꼭 드셔야 하는 건 아니니, 지금까지처럼 과육만 드셔도 전혀 아쉬울 게 없습니다.
그래서 뭘 고르면 될까요
손님들껜 이렇게 정리해드립니다. 새콤한 맛 자체를 즐기신다면 그린키위가 맞고, 신맛이 부담스러우시거나 아이들 간식으로 내놓으실 거라면 골드키위나 루비키위 쪽이 훨씬 편하게 넘어갑니다. 색다른 걸 찾으시거나 선물용으로 눈에 띄는 걸 원하신다면 붉은 과육의 루비키위만 한 게 없습니다. 오래 두고 천천히 드실 거면 냉장에서 잘 버티는 품종을 고르시고, 바로 드실 거면 손에 쥐었을 때 살짝 말랑한 걸로 고르시면 됩니다.
세 가지 키위, 한 가지 반가움
세 가지 다 같은 키위지만, 저마다 자란 내력도 맛도 다릅니다. 저희는 그 중 루비·레드 쪽을 키우지만, 어떤 걸 고르시든 그 계절 키위 한 알을 받아 드시는 반가움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