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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류 노트

농부의 노트 · 감귤류

당도계 숫자, 제가 배운 화학으로 설명해 드립니다

겨울마다 손님들이 물으십니다. 레드향은 13브릭스가 넘는다는데, 그 숫자가 정확히 뭐냐고요. 제주대 화학과를 나온 저한테는 마침 익숙한 질문입니다. 오늘은 당도계 숫자 뒤에 있는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보려 합니다.

당도 높은 감귤류

당도계를 처음 만난 날

제가 당도계라는 물건을 처음 손에 쥐어본 건 밭이 아니라 학교 실습실이었습니다. 제주대학교 화학과에 다니던 시절, 여러 용액의 농도를 재는 실습 중에 당도계도 한 번 다뤄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냥 여러 실험 기구 중 하나였을 뿐, 이게 나중에 제 밭에서 수확철마다 손에서 놓지 못하는 도구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은 레드향 하나를 따도 즙을 몇 방울 짜서 렌즈에 올려보는 게 습관이 됐으니, 그때 스쳐 지나가듯 배운 게 이렇게 제 일이 될 줄은 그 시절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실습실의 짧은 순간이, 지금 제 하루하루와 이렇게 이어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브릭스, 정확히 뭘 재는 숫자인가

당도계에 찍히는 숫자는 정식 이름이 브릭스(Brix)입니다. 이 단위 이름은 독일의 아돌프 브릭스라는 사람이 측정법을 개량하면서 자기 이름을 붙인 데서 왔습니다. 뜻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용액 100g 안에 당분이 몇 g 들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예를 들어 과즙 100g 중에 당분이 13g 녹아 있으면 13브릭스라고 표시합니다. 그러니까 이 숫자는 ‘얼마나 달게 느껴지는가’를 감각으로 매긴 점수가 아니라, 당분이 차지하는 비율을 정확히 잰 농도값이라는 뜻입니다. 손님들이 종종 브릭스를 무슨 당도 순위표처럼 여기시는데, 실은 성분 비율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위에 더 가깝습니다. 이 단위는 감귤만이 아니라 포도나 딸기 같은 다른 과일에도 똑같이 쓰이는, 과일 업계에서는 꽤 보편적인 기준입니다.

이 숫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숫자를 재는 원리도 화학을 공부했으면 낯설지 않습니다. 순수한 물에 당분 같은 물질이 녹아 들어가면, 그 용액의 비중과 굴절률이 함께 올라갑니다. 쉽게 말하면 빛이 그 액체를 통과할 때 꺾이는 각도가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물이 많고 당분이 적은 묽은 즙보다, 당분이 진하게 녹아 있는 즙일수록 빛이 더 크게 꺾입니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당분의 양을 직접 저울에 달아보지 않아도, 빛이 꺾이는 정도만으로 농도를 거꾸로 계산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원리를 한 번 이해하고 나면, 당도계 숫자를 그냥 믿기보다 왜 이런 숫자가 나오는지 알고 쓰게 됩니다.

요즘 당도계는 이렇게 잽니다

지금 흔히 쓰는 당도계는 대부분 이 굴절의 원리를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과즙을 한두 방울 렌즈 위에 떨어뜨리고 들여다보면, 기계 안에서 그 빛이 꺾이는 각도를 읽어 숫자로 바꿔 보여줍니다. 손바닥만 한 기계 하나로 몇 초면 끝나니, 밭에서 열매를 따는 족족 확인하기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저는 수확철이면 나무마다 몇 개씩 짚어 재보는데, 같은 밭이라도 볕이 잘 드는 쪽과 그늘진 쪽 열매의 숫자가 꽤 다르게 나오곤 합니다. 예전에는 눈으로 직접 눈금을 읽어야 하는 방식도 있었지만, 요즘은 액정에 숫자가 바로 뜨는 디지털 방식이 훨씬 편합니다. 대학 때 칠판으로 배운 원리가 이렇게 작은 기계 안에 그대로 들어앉아 있다는 게, 저는 지금도 신기합니다.

그래도 당도계가 필요한 이유

맛은 결국 입으로 보는 거 아니냐고 물으시는 분도 계십니다. 맞는 말이지만, 밭이 넓어지면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열매를 다 맛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럴 때 당도계 숫자는 저한테 일종의 공통 잣대가 되어줍니다. 어느 구역 열매가 더 여물었는지, 언제 수확을 시작해야 할지를 판단할 때 감으로만 밀어붙이지 않고 숫자로 한 번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여러 날에 걸쳐 나눠 딸 때는 어제 딴 열매와 오늘 딴 열매의 숫자를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어서, 수확 시기를 잡는 데도 꽤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 당도계는 제 입맛을 대신하는 게 아니라, 넓은 밭을 관리할 때 제 감각을 보조해주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숫자가 전부는 아닙니다

밭에서 오래 감귤을 만지다 보면, 브릭스 숫자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순간이 훨씬 많습니다. 당도가 높아도 신맛이 같이 세면 맛이 날카롭게 느껴지고, 반대로 당도가 살짝 낮아도 신맛이 적으면 오히려 훨씬 순하고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입에서 좋다고 느끼는 맛은 당도와 산도가 어떤 균형으로 만나느냐에 달려 있지, 숫자 하나가 높다고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숫자가 아무리 높아도 씹는 순간 실망스러우면, 손님은 그 숫자를 다시는 믿지 않으십니다.

여기에 과육의 질감까지 더해집니다. 같은 당도라도 알갱이가 톡톡 씹히면서 즙이 확 터지는 것과, 물컹하게 퍼지는 것은 입안에서 전혀 다른 인상을 남깁니다. 그래서 저는 숫자를 하나의 참고 기준으로 보지, 맛의 전부라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한테는 숫자와 실제로 씹었을 때의 느낌, 둘 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당도계보다 이걸 더 믿습니다

그래서 손님들께 브릭스 숫자만 들이밀며 골라 드리지는 않습니다. 레드향 같은 경우 보통 13브릭스를 넘는 게 평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것도 평균일 뿐 나무마다, 심지어 같은 나무에 달린 열매끼리도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저는 숫자보다 손에 들었을 때의 무게감, 껍질의 색과 탄력, 그리고 직접 까서 한 입 베어 무는 걸 더 믿습니다. 무거운 열매일수록 즙이 꽉 차 있고, 색이 진할수록 당도가 오른 경우가 많다는 건 당도계보다 먼저 몸으로 익힌 감각입니다. 당도계는 그 감각이 맞았는지를 숫자로 한 번 더 확인해주는 보조 도구 정도로 씁니다. 그래서 상자에 담기 전에는 꼭 하나를 까서 직접 먹어보고 나서야 마음이 놓입니다.

손님들께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그래도 숫자를 아예 안 쓰는 건 아닙니다. 레드향처럼 당도가 높기로 알려진 품종은, 손님이 물으시면 평균이 13브릭스 정도라고 말씀드립니다. 다만 그 숫자를 절대적인 약속처럼 드리지는 않습니다. 같은 품종이라도 그해 날씨나 나무의 상태에 따라 조금씩 오르내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숫자는 참고로 알려드리고, 정말 궁금하신 분께는 한 조각 맛보시라고 권해드리는 편입니다.

그때 배운 것, 지금 쓰는 것

화학과에서 배운 지식이 이렇게 매일 밭에서 쓰일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오늘도 당도계를 손에 들고, 그 옆에서 열매를 한 입 베어 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