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머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오픈 소식을 가장 먼저 받아보세요
호돌이농원 심볼호돌이농원커머스 소식받기
감귤류 노트

농부의 노트 · 감귤류

천혜향은 손으로 까는 재미가 있습니다

한라봉이 두꺼운 껍질로 존재감을 낸다면, 천혜향은 얇은 껍질로 손님을 편하게 해 드립니다. 신맛 없이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 덕분에, 저희 밭에서는 신 걸 못 드시는 분들과 아이들이 유독 반기는 귤이기도 합니다.

껍질이 얇은 천혜향

손이 먼저 가는 이유

천혜향을 손에 쥐면 무게보다 먼저 느껴지는 게 매끈한 껍질입니다. 한라봉처럼 꼭지가 톡 튀어나오지도, 껍질이 두껍지도 않습니다. 손톱을 살짝 세워 누르면 겉껍질이 쉽게 갈라지고, 그 틈으로 손가락을 넣으면 껍질 전체가 한 번에 벗겨집니다. 까는 데 힘이 들지 않으니, 귤 하나 까 먹는 일이 성가신 일이 아니라 잠깐의 재미가 됩니다. 저희 밭에 오신 손님들 중에는 그 자리에서 몇 개씩 까 드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한라봉 옆에서 자라는 나무

저희 밭에서 천혜향은 한라봉과 같은 구역에서 자랍니다. 아버지가 가꾸시던 밭을 물려받으면서, 저도 이 나무들과 함께 나이를 먹었습니다. 같은 볕을 받고 같은 바람을 맞아도 열매의 성격은 이렇게나 다릅니다. 그 다름을 손님들께 하나하나 설명해 드리는 게 요즘 제가 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흔한 귤과는 다른 대접을 받는 이유

제주에서 가장 흔한 귤은 11월 12월에 나오는 온주밀감입니다. 값이 싸고 어디서나 만날 수 있어서 편하게 먹는 귤이지만, 딱 그만큼 특별할 것 없는 귤이기도 합니다. 천혜향을 비롯한 만감류는 다릅니다. 겨울을 넘겨 하우스에서 마저 키우고, 나무에서 더 오래 두었다가 수확하는 만큼 손이 더 갑니다. 그래서 저희 손님들도 온주밀감은 편하게 사 가시고, 천혜향은 선물로 따로 챙겨 가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속껍질까지, 손끝으로

천혜향은 겉껍질만 얇은 게 아니라 알맹이를 감싼 속껍질도 얇은 편입니다. 통째로 입에 넣어도 괜찮지만, 저처럼 깔끔하게 드시고 싶은 분들은 손톱이나 작은 핀셋으로 조각마다 속껍질을 하나씩 벗겨내기도 합니다. 시간은 조금 걸려도 알맹이가 다치지 않게 살살 벗기면, 과육만 온전히 남아서 씹을 때 톡톡 터지는 식감이 확실히 다릅니다. 껍질이 두꺼운 품종에서는 엄두도 안 나는 일인데, 천혜향이니까 해볼 만한 방법입니다. 귤을 다 드시고 나면 속껍질 조각이 그릇에 하얗게 쌓이는데, 그것도 나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차 안에서도 부담 없이

껍질을 까면서 손이 끈적여지지 않는 것도 천혜향의 장점입니다. 두껍고 즙이 많은 귤은 까다 보면 손끝에 즙이 묻기 마련인데, 천혜향은 얇은 껍질이 한 번에 떨어지다 보니 그런 일이 적습니다. 사무실 책상에서도, 차 안에서도 부담 없이 까 드실 수 있는 이유입니다. 아이들 도시락이나 간식으로 챙겨 보내기에도 손이 덜 가는 편입니다. 저도 밭일 나갈 때 주머니에 하나씩 넣고 다니는 이유가 이겁니다.

신맛 없이, 부드럽게

저희 밭을 찾는 손님 중에는 신 과일을 아예 못 드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께 가장 먼저 권해 드리는 게 천혜향입니다. 신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산도가 낮고, 그 자리를 당도와 향이 채웁니다. 아이들 데리고 오시는 손님들도 인상 한 번 안 쓰고 한 통을 다 비우는 걸 여러 번 봤습니다. 새콤달콤한 귤을 기대하고 오셨다가 부드러운 단맛에 오히려 놀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1984년, 일본에서 건너온 품종

천혜향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건 1984년, 일본에서 이미 있던 세 가지 교잡 품종을 다시 교배하면서부터입니다. 하나의 품종을 통째로 들여온 게 아니라 여러 세대를 거치며 얇은 껍질과 부드러운 신맛을 함께 잡아낸 셈입니다. 제주에 자리를 잡은 뒤로는 한라봉·레드향과 함께 만감류를 대표하는 품종이 됐습니다. 까는 순간 퍼지는 향이 유독 진한 것도 천혜향만의 매력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세 품종의 장점을 한 번에 얻으려던 시도가, 지금 저희 밭에서 열매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나오는 시기

천혜향은 1월부터 4월까지 나옵니다. 한라봉보다 한 달 정도 더 길게 만날 수 있는 셈입니다. 겨울 끝자락, 다른 만감류가 슬슬 자취를 감출 때도 천혜향은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저희 밭에서는 봄까지 손님을 맞는 역할을 이 귤이 맡고 있습니다. 설 지나고도 한참 동안 진열대에 천혜향이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희도 이맘때가 되면 마지막 수확을 준비하며 한 해 농사를 정리합니다.

레드향과 헷갈리신다면

천혜향과 레드향을 헷갈려 하시는 손님들도 종종 계십니다. 레드향은 이름처럼 껍질에 붉은 기가 돌아서 다홍색에 가깝고, 천혜향은 주황빛에 더 가깝습니다. 신맛이 적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껍질 두께나 손질하는 느낌은 천혜향 쪽이 한결 가볍습니다. 두 품종 다 맛보시고 취향에 맞는 쪽을 골라 두시는 손님들도 많습니다.

숫자로도 확인합니다

맛은 결국 먹어봐야 알지만, 저는 습관적으로 당도계를 옆에 둡니다. 즙을 한두 방울 떨어뜨리면 숫자가 뜨는데, 신맛이 적은 만큼 천혜향은 이 숫자가 후하게 나오는 편입니다. 손님들께 '새콤달콤'이 아니라 '달콤하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는 것도 이 숫자를 여러 번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숫자로 확인하고 나면 손님께 더 자신 있게 권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저울보다 이 숫자 하나로 설명이 더 빠를 때가 많습니다.

당도계가 숫자로 보여주는 건 사실 빛이 꺾이는 정도입니다. 대학 화학과 시절 배운 굴절률이, 요즘은 귤 상자 앞에서 더 자주 쓸모 있습니다.

보관은 짧게만

보관법은 감귤류가 대체로 비슷해서, 자세한 건 따로 정리해 둔 글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천혜향만 짧게 말씀드리면, 껍질이 얇은 만큼 조금 더 조심스럽게 다루시는 게 좋습니다. 바로 드실 게 아니라면 씻지 마시고 키친타올로 감싸 냉장 채소칸에 넣어 두시고, 무른 것부터 먼저 골라 드시면 됩니다. 이 정도만 지켜도 일주일 남짓은 처음 그 맛 그대로 즐기실 수 있습니다. 무리해서 오래 두시기보다 며칠 안에 드시는 편을 저는 더 권합니다.

귤 하나 까는 잠깐

천혜향을 고르실 때 저는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얇은 껍질, 신맛 없는 맛, 그거면 충분합니다. 겨울 손이 시릴 때 귤 하나 까 먹는 잠깐이 따뜻해지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