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노트 · 감귤류
한라봉 하나에 이렇게까지 마음을 씁니다
저희 농원에서 대표 과일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망설임 없이 한라봉을 고릅니다.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로운 나무인데도 그만큼 값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다른 품종과 비교하지 않고, 한라봉 하나만 붙잡고 제가 아는 걸 전부 풀어보려 합니다.

손이 많이 가는 만큼
한라봉은 손이 많이 가는 나무입니다. 일반 감귤보다 관리할 게 많고, 수확 시기를 맞추는 것도 까다로운 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만큼, 맛은 확실히 다릅니다. 아버지가 1987년부터 감귤을 키워왔지만, 제가 농원을 물려받으면서 한라봉 비중을 점점 늘린 것도 그 이유였습니다. 까다로운 과일일수록 정성을 들인 티가 확실하게 난다는 걸, 밭에서 오래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겨울 밭에 나가 보면 나무마다 손이 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가지가 열매 무게를 못 이겨 처지지는 않는지, 껍질이 얇아지지 않게 온도 변화는 괜찮은지 늘 살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시간이 쌓이다 보니, 저한테 한라봉은 여러 품종 중 하나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대표 과일이 됐습니다.
이름은 한라산에서 왔습니다
한라봉이라는 이름은 볼록 튀어나온 꼭지 모양이 한라산 봉우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이야기를 손님들께 종종 해드립니다. 실제로 보시면 정말 그렇습니다. 과일 위쪽이 봉긋하게 솟아 있어서, 다른 감귤류와는 한눈에 구분이 됩니다. 처음 드시는 분들은 손에 쥐어 보고 다른 감귤보다 확실히 크고 묵직해서 놀라시기도 합니다.
껍질은 두껍고 표면이 거친 편인데, 그 안에 든 과육은 크고 즙이 아주 많습니다. 맛은 부드러우면서 단맛이 진한 편이라, 신맛을 부담스러워하시는 분들도 편하게 드십니다. 수확은 1월부터 3월 사이, 한겨울부터 이른 봄까지가 제철입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매대에 한라봉이 올라오는 것만 봐도 계절이 바뀐 걸 느낍니다.
무게부터 들어보세요
한라봉을 고르실 때 제가 가장 먼저 말씀드리는 건 크기가 아니라 무게입니다. 크기만 보고 고르시면 정작 속은 실속이 없는 경우도 있어서, 저는 늘 무게를 먼저 보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비슷한 크기라도 손에 들었을 때 묵직한 쪽이 즙이 많고 실합니다. 색도 함께 보시면 좋은데, 연한 주황보다 진한 주황일수록 당도가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매대에 여러 개를 놓고 하나씩 들어 비교해 보시면, 이 차이가 생각보다 금방 느껴지실 겁니다.
꼭지와 껍질,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다음으로 보는 건 꼭지 주변입니다. 꼭지가 바싹 마르지 않고 단단하게 붙어 있는 걸로 고르세요. 꼭지 주변이 들뜨거나 말라 있으면 그만큼 수분이 빠졌다는 신호입니다. 오랫동안 한라봉을 만지다 보면 손끝으로도 그 상태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껍질이 매끈할수록 당도가 높다는 이야기도 많이들 하시는데, 한라봉은 원래 다른 만감류보다 껍질이 거친 편이라 이 기준 하나만으로 판단하시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껍질의 매끈함보다는 무게와 꼭지 상태를 먼저 보시고, 매끈함은 참고 정도로만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래서 손님들께도 하나만 보지 마시고 몇 개를 같이 놓고 비교해 보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바로 드실 건가요, 두고 드실 건가요
드시는 목적에 따라 고르는 기준도 조금 달라집니다. 바로 드실 거면 살짝 눌렀을 때 탄력이 느껴지는 걸 고르시면 되고, 며칠 두고 드실 거면 단단한 걸로 고르시는 게 좋습니다. 단단한 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부드러워지니, 바로 드시기엔 아쉬워도 두고 드시기엔 오히려 알맞습니다. 명절 즈음에 선물로 찾으시는 분들도 많은데, 그럴 때는 이동하는 동안에도 쉽게 무르지 않도록 더더욱 단단한 쪽으로 고르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저희도 명절에 부모님 댁에 보낼 때는 다 드실 때까지 무르지 않도록, 일부러 단단한 것들로만 골라 담습니다.
손질은 이렇게 하시면 편합니다
한라봉은 껍질이 두꺼워서 처음 드시는 분들은 까는 것부터 어려워하십니다. 꼭지 반대쪽 아래쪽에 살짝 칼집을 내고 돌려가며 까시면 손으로 뜯는 것보다 훨씬 수월합니다. 껍질을 깐 뒤에는 속껍질까지 그대로 드셔도 되고, 속껍질이 억세게 느껴지시면 알맹이만 발라 드셔도 좋습니다. 손이 끈적해지는 게 싫으시면 작은 과도를 하나 옆에 두고 쓰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저희 집에서는 겨울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하나씩 까먹는 게 흔한 풍경입니다.
보관은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받으신 한라봉은 바로 냉장고에 넣기보다, 실온 18~22도 정도에서 하루 이틀 두시는 걸 먼저 권해드립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당도와 향이 한층 더 살아납니다. 급하게 드실 게 아니라면 이 하루 이틀이 꽤 큰 차이를 만듭니다.
오래 두고 드실 거라면 씻지 마시고 키친타올로 하나씩 감싸서, 숨 쉴 자리를 남겨둔 채 냉장고 채소칸에 넣으시면 됩니다. 씻어서 보관하시면 남은 물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빨리 무르기 쉬우니, 씻는 건 드시기 직전으로 미뤄 주세요. 이렇게 하시면 3일에서 일주일 정도는 신선하게 드실 수 있고, 전체적으로는 실온에서 1~2주, 냉장 보관하시면 2~4주까지도 가능합니다. 다만 중간에 무르거나 상한 게 보이면 먼저 골라내 주세요. 하나가 상하면 곰팡이가 주변까지 옮겨가기 쉽습니다. 택배로 받으신 상자를 열자마자 바로 냉장고에 넣는 분들이 많으신데, 그 하루 이틀을 참으셨다가 넣으시면 확실히 다릅니다.
참, 상자나 매대에 붙은 당도계 숫자(Brix)는 물 100g에 녹은 당분이 몇 g인지를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25라고 찍혀 있으면 100g 중 25g이 당분이라는 뜻인데, 대학 시절 화학 시간에 배운 것 중 요즘 밭에서 가장 자주 떠올리는 지식입니다.
한라봉 하나로 충분합니다
비교하지 않고 한라봉 하나만 놓고 이야기해봤습니다. 저희 농원에서 이 과일에 유독 마음이 가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올겨울, 저희가 고른 한라봉으로 그 마음을 직접 확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