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노트 · 감귤류
화학과를 나와서, 이렇게 방제합니다
제주대학교 화학과를 다니던 스무 살 무렵엔 이 전공이 나중에 밭에서 이렇게 쓰일 줄 몰랐습니다. 지금 저는 봄가을로 약통을 지고 나무 사이를 오가며, 그때 배운 것들을 가장 자주 떠올립니다. 왜 화학과였는지, 그리고 밭에서는 그걸 어떻게 쓰고 있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화학과에 가고 싶었던 이유
저는 1978년생으로 한림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밭에서 아버지가 약통을 메고 나무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보면서 컸습니다. 그때는 그냥 당연한 풍경이었지만, 조금 자라서는 저 약이 나무 안에서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왜 어떤 때는 치고 어떤 때는 안 치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어른들에게 물어봐도 대부분 경험과 감으로 대답하셨는데, 저는 그 답을 좀 더 근본적으로 알고 싶었습니다. 농약을 무조건 줄이자는 구호보다, 왜 줄일 수 있는지 원리를 알고 싶어서 대학은 화학과로 정했습니다.
그 무렵 저한테 있었던 건 반감이 아니라 궁금증이었습니다. 약을 무조건 나쁘게 보고 피하자는 쪽도 아니었고, 하던 대로 계속 치자는 쪽도 아니었습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면, 지금보다 적게 쓰면서도 나무를 지킬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나중에 제 손으로 과일을 보낼 손님들 생각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먹어도 괜찮다고 느낄 만한 과일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제주대학교 화학과에서 배운 것
화학과에서 배운 건 특정 농약의 이름이나 사용법 같은 실용적인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물질이 어떤 조건에서 반응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분해되는지, 농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효과와 부작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같은 기본 원리였습니다. 당시엔 이게 밭에서 직접 쓰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농원을 이어받고 보니, 정확히 이 기초가 판단의 바탕이 되더군요. 같은 약이라도 언제,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는 걸 이론으로 먼저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예를 들어 성분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줄어든다는 것, 농도를 두 배로 올린다고 효과가 두 배로 좋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 같은 감각은 학교에서 먼저 얻었습니다. 밭에서는 이런 감각이 있고 없고가 꽤 큰 차이를 만듭니다. 무작정 자주, 진하게 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 때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는 게 이 배경입니다. 화학과를 나왔다고 농사가 저절로 쉬워지는 건 아니지만, 판단할 때 기준 하나는 확실히 더 갖고 시작하는 셈입니다.
병해충이 언제 오는지 보는 법
밭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 중 하나는 나무를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봄에 새순이 올라올 때, 장마철 습도가 오르기 시작할 때, 이런 시기마다 병해충이 생기기 쉬운 조건이 다릅니다. 잎 뒷면이나 가지 사이를 살펴보면서 진딧물이나 응애 같은 것들이 늘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 괜찮은지를 먼저 확인합니다. 날짜를 정해놓고 기계적으로 약을 치기보다는, 나무의 상태와 그날그날 날씨를 보고 판단하는 쪽입니다. 이 판단이 틀리면 나무도, 열매도 힘들어지기 때문에 저한테는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비가 며칠 이어지고 나면 꼭 한 번 더 돌아봅니다. 습한 날씨 뒤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볕이 좋고 바람이 잘 통하는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여유를 두고 지켜보는 편입니다. 해마다 조금씩 다르게 흘러가서, 작년과 똑같이 하면 맞을 때도 있고 안 맞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매년 다시 보고 다시 판단하는 게 저한테는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필요한 만큼만, 최소로
그렇다고 약을 아예 안 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방제 작업을 자주 합니다. 방금 밭에서 약 치고 들어온 날도 많습니다. 다만 밭 전체를 정해진 날짜에 일괄로 치기보다는, 문제가 보이는 구역과 시기를 좁혀서 필요한 만큼만 치려고 합니다. 화학과에서 배운 대로 농도와 횟수를 늘린다고 효과가 그만큼 좋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늘리기보다는 정확한 시점을 놓치지 않는 쪽에 더 신경을 씁니다.
예를 들어 나무 전체가 아니라 증상이 보이는 몇 그루, 몇 구역만 먼저 손보고 며칠 뒤 다시 살피는 식입니다. 거기서 더 번지지 않으면 그걸로 끝내고, 번지는 기미가 있으면 그때 범위를 넓힙니다. 정해진 횟수를 다 채우는 게 목표가 아니라, 나무가 괜찮아지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이렇게 나눠서 봅니다. 손은 더 가지만, 저는 이 방식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아예 안 치는 게 답이 아닌지
가끔 손님들 중에는 약을 아예 안 친 과일이 제일 좋은 거 아니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저는 그게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병해충을 그대로 두면 나무가 먼저 상하고, 열매 껍질에 반점이 생기거나 무르는 일이 많아져서 결국 손님상에 올릴 수 있는 과일 자체가 줄어듭니다. 나무를 지키는 일과 약을 줄이는 일은 반대말이 아니라, 같이 가야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안 치는 쪽이 아니라, 잘 골라서 치는 쪽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세대와 다른 점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감귤은 제주 농가 소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큰 작물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다들 감귤 농사에 매달렸고,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약을 대하는 방식도 여러모로 달랐을 거라 짐작합니다. 아버지가 그 시절 정확히 어떤 기준으로 방제를 하셨는지까지는 저도 세세히는 모릅니다. 다만 지금은 그때보다는 정보도 많아지고,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것도 늘어난 것 같습니다.
요즘은 겨울이 예전만큼 춥지 않다 보니, 병해충이 나타나는 시기 자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그래서 예전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는, 매년 나무와 날씨를 보면서 다시 판단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심은 나무를 지금은 제가 돌보고 있지만, 나무를 대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도 된다고 봅니다.
마무리
화학과에서 배운 건 결국 밭에서 균형을 잡는 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도 필요한 만큼만 치고 왔습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